[루키=이동환 기자] "이 시국에 일본을 가신다고요?"

예상했던 대로다. 주변에서 핀잔과 걱정이 쏟아진다.

지난 10월 8일과 10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NBA 프리시즌 경기 취재를 계획한 것은 7월 말. 그러니까 한일 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하기 직전이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후 급속도로 틀어지는 한일 관계를 지켜보면서 한 영화 제목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주변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취재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고민 때문에 마음이 종종 복잡해지기도 했다.

“한일 관계는 한일 관계고, 그건 엄연히 일이잖아요.”

한 지인은 공과 사, 아니 공과 공을 구분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국제 정세는 국제 정세이고, 취재는 언론에 종사하는 직업인으로서 엄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얘기였다.

비시즌에 <점프볼> 손대범 편집장께서 미리 해주신 조언도 일본 취재 계획을 관철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라도 NBA 취재 현장을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 그 경험이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루키더바스켓> 박진호 편집장, 박상혁 기자께서는 “어떻게 지금 일본을 가니”라고 놀리듯 이야기하면서도 잘 다녀오라며 힘을 실어주셨다. 다른 선후배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시국 기자’

동료 기자들이 지어준 신박한 별명을 뒤로 한 채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박 5일의 사이타마 취재 일정이 그렇게 시작됐다.

 

이곳은 일본, 야구의 나라

한 주의 스케줄을 돌아보면, 이것저것 하는 일이 은근히 많다. NBA 기사를 쓰고 국내농구 현장도 취재한다. 4년 넘게 NBA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 중이고 국내 농구 팟캐스트도 작년부터 시작했다.

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이것저것 잡다하게 하다보니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다. 그러다보니 NBA 관람과 관련해 질문을 주시는 국내 NBA 팬분들이 그간 적지 않았다.

“이번에 휴스턴에 NBA 경기를 보러 갈 생각인데, 어떤 자리가 경기가 제일 잘 보일까요?”

“경기 전에 몸을 푸는 선수들한테 사인을 받고 싶은데, 혹시 그래도 상관없나요?”

실제로 개인 메일을 통해 받았던 질문들이다.

민망하게도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죄송하지만 그 부분은 제가 잘 모릅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NBA 경기가 열리는 현장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9년 넘게 NBA 관련 기사를 조금씩 써왔지만 NBA와 관련된 현장을 경험한 적은 아예 없었다.

능동적으로 NBA 취재를 시도해본 것은 지난해 가을 <점프볼> 손대범 편집장의 도움으로 레지 밀러를 비롯한 TNT 해설진의 공동 전화 인터뷰에 참여한 것이 전부. 외신에서 나오는 보도를 국내에 간단히 전달하고 그것을 가공해 칼럼을 쓰는 것 외의 기사 작성 과정을 거친 적이 사실상 없었다.

영역을 넓히고 싶었다. ESPN의 애드리안 워나로우스키 기자와 잭 로우 기자, <디 애슬레틱>의 샴스 카라니아 기자와 샘 아믹 기자 같은 현지 소식통들이 트위터와 온라인 지면을 통해 전하는 뉴스의 현장에 함께 자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현장의 분위기를 알고 기사를 쓰는 것과, 그걸 모르고 표면적인 것만 알고 기사를 쓰는 것은 천양지차다.”

<루키더바스켓> 박진호 편집장, <점프볼> 손대범 편집장, <스포츠조선> 류동혁 기자, <스포츠동아> 정지욱 기자를 비롯한 선배 기자들이 누누이 해주셨던 공통된 조언이다.

때문에 이번 사이타마 취재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큰 스케줄이었다. NBA 선수들의 역동적인 플레이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도 더해지면서 첫 날에는 마음이 붕 떴다. 미리 다운로드해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없었더라면 비행기에서 복잡한 마음을 미처 가누지 못했으리라.

 

나리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도쿄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다음날 저녁에 있을 첫 경기를 수월하게 취재하기 위해선 가능한 한 빨리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해야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에서 NBA 경기를 취재한다니. 참 묘하다, 그치?”

전철 안에서 캐리어를 붙잡고 낑낑대던 배승열 기자가 대뜸 물었다.

이번 사이타마 취재에 동행한 배승열 기자는 일본어 능력자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잠시 살았었고 그 덕에 일본어 회화가 수준급이다. 생애 첫 NBA 취재의 파트너로 배승열 기자를 택한(?) 이유. 그가 언어 장벽을 넘나들며 취재에 큰 힘을 보태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뒤에 언급된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의 존재가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배승열 기자가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인터뷰였다.)

동시에 그는 ‘농구의 도시’ 원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열혈 농구 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일본과 농구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라고 했다. 일본과 야구, 일본과 애니메이션이라면 몰라도 일본과 농구라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일본과 농구하면 완결된 지 20년이 넘은 <슬램덩크>를 떠올린다.

“실제로 인기 별로 없다는데?”

아는 일본인 친구들에게 일본 농구 인기에 대해 물어봐달라고 했더니, 배승열 기자는 이런 대답을 전해줬다.

일본은 무척 크고 매력적인 아시아 시장이다. 하지만 농구라는 종목에 한해서는 불모지에 가깝다.

일본인 출신 NBA 리거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것도 있고(물론 슬프게도 한국은 일본보다도 더 없었다), 무엇보다 일본 자체가 농구에 관심이 그리 큰 나라가 아니다. <원피스>가 흥행했다고 해서 일본 사람들이 해적 문화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다. 일본은 <슬램덩크>의 나라이지만, 그들이 농구를 좋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편의점을 들렸다. 일본 편의점에서만 볼 수 있는 먹거리를 보며 설레고 있던 차에 신문 가판대가 눈에 들어왔다.

가판대에 신문이 잔뜩 꽂혀 있었는데 대부분의 1면 기사가 야구였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포스트시즌 경기 기사들이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마침 럭비 월드컵이 도쿄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럭비 대표팀의 이야기를 빅뉴스로 다룬 매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헤드라인은 야구였다. 농구는 당연히 없었다.

‘왜 하필 지금 일본일까?’

16년 만에 일본에서 NBA 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 의문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1분도 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추측해낼 수 있었다.

일본에 새로운 NBA 리거가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와타나베 유타가 투-웨이 계약을 통해 멤피스 유니폼을 입은 데 이어 올해 6월에는 혼혈 일본선수 하치무라 루이가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워싱턴 위저즈에 지명됐다. 특히 하치무라의 NBA 입성은 그가 카와이 레너드와 비교되면서 미국 내에서도 꽤 화제를 모았다. 일본에서도 하치무라와 NBA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도쿄 곳곳에서 하치무라 루이가 등장한 광고판을 볼 수 있었다. NBA 용품 숍에는 하치무라 루이를 위한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일본에 있는 동안 부러운 마음만 커졌다.

 

게다가 내년 여름에는 도쿄에서 큰 스포츠 이벤트가 열린다. 하계 올림픽이다. 국내에서는 방사능, 전범기 등의 이슈로 보이콧 여론이 꽤 있지만, 해외에서는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는 언론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 도쿄 올림픽이 파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최근 중국에서 열린 농구 월드컵에서 미국 대표팀이 역대 최악의 성적인 7위에 머물면서 내년 여름 일본에서 스테픈 커리, 앤써니 데이비스, 데미안 릴라드 같은 NBA 슈퍼스타들의 플레이를 직접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무척 커졌다. NBA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하기 시작한 뒤로 농구는 하계 올림픽의 최고 흥행 카드였는데, 도쿄 올림픽 역시 예외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2003년 이후 단 한 번도 일본에서 경기를 연 적이 없는 NBA 사무국이 갑자기 일본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비즈니스적으로 무척 당연한 선택이었다.

NBA에 대한 관심이 그간 적었을 뿐 일본은 시장도 크고 인프라도 충분히 갖춰져 있는 곳이다. 과거에 도쿄 돔, 요코하마 아레나,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무려 12번이나 NBA 정규시즌 경기를 치른 경험도 있다. 지금도 일본은 멕시코(9회), 영국(8회)을 제치고 미국과 캐나다 외에 NBA 정규시즌 경기를 가장 많이 개최한 나라로 남아 있다. (멕시코는 2019-2020시즌에도 정규시즌 경기를 두 차례 연다. 그러면 개최 횟수 부문에서 일본을 1회 차이로 바짝 쫓을 전망. 일본에서 정규시즌 경기가 다시 열리려면 조금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데, 아마 2020-2021시즌에는 멕시코가 일본을 제치지 않을까 싶다.)

결국 NBA 사무국은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토론토 랩터스와 휴스턴 로케츠의 프리시즌 경기를 두 차례 열기로 결정했다. 디펜딩 챔피언과 제임스 하든이라는 슈퍼스타를 보유한 팀이 맞붙었으니 화제성이 워낙 높았다. 결정 당시에는 예상치 못했던 러셀 웨스트브룩의 휴스턴 합류라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관심이 더 커졌다. 흥행하지 않을 수 없는 빅매치였다.

 

▲ 두번째 경기 날 러셀 웨스트브룩과 제임스 하든은 친분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유쾌한 말투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하지만 CNN 기자가 중국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자 이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사이타마에서 중국이 왜 나와?

같은 사건도 누군가에겐 행운이 되고, 누군가에겐 불운이 된다. 사건 그 자체로 행운이거나 불운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당사자가 어떤 상황과 입장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이 달라지는 경우도 무척 많다.

휴스턴 로케츠의 대릴 모리 단장이 트위터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한 사건이 그랬다.

지난 10월 5일 모리 단장은 ‘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을 지지하자.)’라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렸다가 삭제했는데, 그 트윗은 기사가 쓰이고 있는 지금까지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다수의 중국 매체와 기업들이 이미 NBA와 관계를 끊기 시작했으며, NBA 선수들의 중국 스폰서 계약이 취소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을 방불케 하는 NBA와 중국의 갈등은 르브론 제임스의 '실언'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스테픈 커리, 스티브 커 감독을 향한 조롱까지 겹쳐지면서 전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건은 일본 프리시즌 첫 번째 경기가 열리기 불과 사흘 전에 시작됐다. 취재를 위해 일본을 찾은 입장에선 사실 큰 행운이었다.

아담 실버 총재를 비롯해 NBA 감독, 선수들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직접 코멘트를 하거나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 일본 시장 공략을 노리는 NBA나 일본과 NBA의 끈을 단단하게 만들려던 일본 농구계, 일본 미디어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운 불운이었다. 분명 총재와 선수들이 보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은 일본인데, 정작 인터뷰에서 거론되고 관심이 집중되는 나라는 엉뚱한 바다 건너 나라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대릴 모리 단장이 이끄는 휴스턴이 일본을 찾은 것도 기자들의 질문 열기에 불을 지폈다. 중국 사안과 관련해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나온 기자들의 질문은 현장에서 느끼기에 무척 직접적이고 과감했다.

사이타마 첫 경기였던 8일 경기를 1시간 앞둔 저녁 6시. 사이타마 아레나 내부에 위치한 프레스 컨퍼런스 룸에서 아담 실버 총재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처음엔 빈자리가 꽤 있는 듯 하더니 기자회견을 20여분 앞두고는 금방 좌석이 꽉 찼다. 자리가 없어 서서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기자들도 많았다.

 

▲ 흥분하지 않고 대답을 이어가는 아담 실버 총재가 존경스러워질 정도로 외신 기자들의 질문은 직접적이고 과감했으며 때론 공격적이었다.

 

이 기자회견이 큰 이슈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실버 총재는 회견장에 오기 전에 새로운 공식 성명을 메일을 통해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모리 단장의 트윗이 논란이 된 직후 실버 총재는 ‘모리 단장의 트윗이 중국에 있는 팬들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먼저 발표한 바 있는데, 이 내용은 팬들의 조롱을 받은 것은 물론 미국 정치권에서도 큰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실버 총재는 앞선 성명의 내용을 사과하고 사무국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는 새로운 성명을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그 성명이 발표된 후 약 30여분이 지나 그는 회견장에 도착했다.

실버 총재의 모두 발언이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이 됐다. 첫 2-3개의 질문은 일본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전부 일본 기자들에게서 나왔다. 일본에서 16년 만에 NBA 경기가 열렸으니 나오는 게 당연했던 질문.

하지만 이후부터 기자회견의 방향은 급속도로 중국과 관련된 내용으로 바뀌었다. 한 기자가 중국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자 이후 기자들이 연관된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심지어 홍콩에서 시위를 취재하다가 급히 일본으로 넘어와 아담 실버에게 질문을 던진 기자도 있었다.

“중국 매체에서 프리시즌 경기 중계를 취소했는데 사무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생각입니까?”

“홍콩에 NBA 지사가 30년 째 있었고 그곳에는 60여명의 NBA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실 생각이 있습니까?”

“중국농구협회 회장인 야오밍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나요?”

“중국에는 정말 사과하실 생각이 없으신 거죠?”

어떤 질문에도 흥분하지 않고 정제된 코멘트로 답하는 실버 총재가 존경스러워질 지경이었다.

 

▲ 두 번째 경기 날 현장을 찾은 CNN의 크리스티나 맥팔레인 기자는 마이크 댄토니 감독, 러셀 웨스트브룩, 제임스 하든에게 중국과 관련된 질문을 던져 인터뷰이들과 NBA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맥팔레인 기자에게서 마이크를 가져가려는 NBA 관계자의 손이 보인다. 맨 왼쪽은 우연히 화면에 함께 잡힌 필자의 모습. 새삼 다이어트를 다짐했다. (사진=NBA 공식 인터뷰 영상 캡쳐)

 

두 번째 경기인 10일 경기가 끝나고 진행된 공식 인터뷰에서는 큰 논란이 된 사건까지 벌어졌다.

CNN의 크리스티나 맥팔레인 기자가 러셀 웨스트브룩, 제임스 하든에게 중국 사태와 관련한 질문을 했는데, 현장에 있는 NBA 사무국 관계자들이 “농구와 관련된 질문 외에는 하지 말아달라”라며 이를 제지하면서 양 측 사이에 언쟁이 벌어진 것이다. 

맥팔레인 기자의 질문은 결국 무시됐다. 웨스트브룩과 하든은 답을 피했고, 기자회견이 끝난 후 맥팔레인 기자는 관계자들에게 다가가 이 부분을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이날 CNN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맥팔레인 기자의 질문이 거부되는 장면이 영상으로 공유되면서 NBA의 합리적이지 못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기 후 감독과 선수들에게 중국 사태에 대해 질문하는 게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거리낌 없이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으려는 기자 정신 자체는 정말 대단해 보였다.”

맥팔레인 기자의 모습을 함께 지켜본 배승열 기자가 한 이야기다.

실제로 이런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무척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국내 농구 현장과 NBA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질문의 선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선수와 기자들이 속해 있는 문화권이 다르고 현장의 분위기도 다르다. KBL 현장에서는 괜찮은 질문이 NBA 현장에서는 이상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당연히 반대도 가능하다. 사이타마 현장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물론 영어로 직접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한 소심함도 원인이었다.)

사이타마에서 열린 두 경기를 취재하면서 해외 매체의 기자들이 매우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어떤 태도와 자세로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이들이 어떻게 답하는지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더불어 그들이 공유하는 인터뷰의 ‘선’에 대한 감도 어렴풋이 잡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직접 질문을 던져보리라.’ 두 번째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언젠가 다시 찾아올 NBA 취재 기회를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염용근 선배와 때마침 커플 룩. 이 사진을 보면서도 '내일부터 다이어트'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사이타마에서 만난 사람들

“모레 경기는 좀 더 즐기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네이버 스포츠에 ‘염용근 칼럼’을 게재하고 있는 염용근 기자는 첫 날 경기가 끝난 후 이런 조언을 전해주셨다.

그 역시 사이타마 현장을 함께 한 기자였다. 실질적으로 염 기자와 동행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이타마 첫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 앞에서 만났고, 그는 첫 경기만 현장에서 지켜본 뒤 다른 일정이 있어 다시 한국으로 떠났다.

게다가 첫 경기는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아담 실버 총재의 기자회견에 참석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었던 터라, 실제로는 그와 경기를 함께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경기 전에 함께 사이타마 아레나를 둘러보며 경험담을 공유한 것이 전부였다.

염 기자는 네이버 라디오 ‘US바카’에 몇 번 출연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그런 분을 일본에서 다시 만나니 더 반가웠다. 그는 이전에 NBA 현장 취재를 위해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을 살려 NBA 현장에 대한 알짜배기 정보를 미리 알려줬다.

“기자석에서 기사를 다 쓰고 가는 기자들도 종종 있긴 한데, 대부분은 미디어 룸에서 마무리를 하더라고요.” 첫 경기 취재를 앞두고 염 기자가 전해준 이야기다. 

국내 농구 경기장에는 미디어 룸, 즉 기자실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웬만하면 관중석 한켠에 위치한 기자석에서 경기 관람(?)과 기사 작성까지 함께 한다.

하지만 NBA 현장은 달랐다. 경기장 내부에 큰 미디어 룸이 따로 있었고,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곳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며 기사를 작성했다. 기자석에서 기사 작성까지 마무리하는 기자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국내 농구 현장을 다닐 때처럼 습관적으로 기자석에 자리를 잡으려다, 조언을 들은 뒤 가방을 들고 미디어 룸으로 향했다. 미디어 룸에는 일본 기자들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에서 온 기자들이 이미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애초에 미디어 룸이라는 존재 자체가 낯설어서 뻘쭘하게 자리를 찾다가 간신히 빈자리에 짐을 내려두고 노트북을 폈다.

첫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이타마 현장에는 평소 트위터를 통해 지켜보던 <AP 통신>의 팀 레놀즈 기자나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의 조나단 피네건 기자 같은 거물급 기자들도 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가 열린 날에도 막상 현장에서는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미디어 룸에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짧은 말이라도 건넬 수 있었겠지만, 그들이 얼마나 바쁘게 일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자제했다. 너무 소심했던 걸까. 다음에 어떤 현장에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기사 잘 읽고 있다”는 한 마디는 꼭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당당히 할 수 있을 만큼 나 스스로가 더 좋은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 사이타마 아레나를 둘러보며 'NBA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됐다. 한 마디로 레벨이 달랐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경기 2시간 전에 도착했던 첫 날은 염용근 기자, 배승열 기자와 함께 사이타마 아레나를 둘러봤다. 사이타마 아레나를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는 동안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와, 여기 너무 크고 쾌적한데요?”

“진짜 크죠? 어디서 봐도 코트가 잘 보이더라고요. 한국에는 언제 이런 경기장이 생기려나….”

그간 NBA 현장을 다녀온 선배 기자들이 “우리나라에는 NBA 경기를 치를 만한 수준의 경기장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NBA 경기를 치르는 곳을 직접 가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 삼산 정도면 충분히 좋지’하는 삐뚠 생각이 조금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이타마 아레나에 처음 들어선 순간 선배 기자들이 말했던 것이 어떤 이야기인지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농구경기장을 보면서 그런 웅장함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한동안은 그 규모에 압도돼 있었다. 너무 많은 좌석이 깔려 있었는데, 어느 곳에서 코트를 바라봐도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좌석 배치가 잘 돼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사였다. 인천 삼산실내체육관, 고양실내체육관은 규모는 무척 크지만 좌석이 배치된 경사가 다소 가팔라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코트가 작게 보이고 경기의 박진감이 적게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이타마 아레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자리에서 코트를 바라봐도 현장감을 느끼며 경기를 볼 수 있게 설계가 돼 있었다. 농구 전용 구장이 아님에도 이 정도 관람 환경을 조성해냈다는 사실에 놀랐고 동시에 부러웠다.

 

▲ 신주쿠에서 만난 두 랩터스 팬. 앨튼 레이드(좌)와 브랜든 미나(우).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신주쿠에서 만난 두 토론토 팬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토론토 열성 팬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앨튼 레이드와 브랜든 미나.

신주쿠에 ‘도쿄 셀렉션’이라는 유명 NBA 용품 숍이 있는데, 이곳을 들렸다가 우연히 그들을 만났다.

미나는 “토론토에서 랩터스를 응원하러 이곳까지 왔다”며 “사실 일본은 아예 처음인데 휴가 겸 랩터스 경기도 보러 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레이드는 대뜸 “파스칼 시아캄 저지에 일본에서 사인을 받았다”며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요즘 토론토 선수들은 인터뷰에서 디펜딩 챔피언의 자부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프레드 밴블릿의 코멘트였다. 밴블릿은 미디어데이 인터뷰에서 “레너드가 없어도 리그 2연패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이 코멘트를 미나와 레이드는 어떻게 여길까. 이야기를 꺼내니 미나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을 이어갔다.

“맞는 말이다. 밴블릿의 말처럼 또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너드가 떠난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우승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번 시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승을 한 번 경험하면 이런 프라이드와 자신감이 생기는 걸까. 혹은 이게 디펜딩 챔피언의 팬들이 가지는 여유라는 걸까. 고맙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사에 써도 좋다고 말하며 다른 상품을 보러 자리를 떴다.

 

▲ 팬 페스티벌 행사에서는 한국인 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기윤 씨(좌)와 강경철 씨(우).

 

한국인 팬들도 만났다.

사이타마 첫 경기와 두 번째 경기 사이에 하루의 휴식일이 있었는데 이날 사이타마 아레나에서는 ‘팬 페스티벌’ 행사가 열렸다. 크리스 보쉬, 디켐베 무톰보, 숀 매리언 등을 비롯한 전설적인 선수들과 토론토, 휴스턴의 현역 선수들이 나와 3점슛 콘테스트, 스킬스 챌린지 같은 이벤트 경기를 치르는 행사였다.

이날 사이타마 아레나 2층에서 한국인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인 이기윤 씨와 강경철 씨. 회사 동기인 둘은 파견 근무를 위해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이다. 둘은 첫 날 경기도 사이타마 아레나 현장에서 지켜봤다고 했다.

한국인 팬으로서 일본에서 NBA 경기를 직접 본 기분은 어땠을까.

이기윤 씨는 “이 정도 규모에 NBA 경기를 치를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이 준비돼 있다는 게 솔직히 너무 부럽다. 일본은 인구도 많고 하치무라 루이의 NBA 진출을 계기로 관심도가 높아지다 보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 것 같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보면 사실 아직 조건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은 게 현실이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서 “스테픈 커리를 좋아하는 부인과 NBA 경기를 보러 미국에 가자고 평소에 자주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제 부인, 딸과 함께 경기를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고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NBA 라이트 팬이라고 소개하며 쑥쓰러워한 강경철 씨는 “저는 일본 파견 근무를 시작한지 2주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이번 기회가 운명적으로 느껴졌다”며 “동기인 기윤 씨의 말처럼 저 역시 사이타마 아레나의 규모에 처음에 정말 많이 놀랐다. 무엇보다 실제로 보기 힘든 NBA 선수들을 이곳 일본에서 봤다는 게 신기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런 기회가 생기면 좋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생겼다”고 밝혔다.

 

▲ 사이타마 경기를 보기 위해 히로시마에서 온 가족 팬들. 그들은 모두 휴스턴의 우승을 염원했다.

 

사이타마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는 경기장 앞에서 눈에 띄는 한 일본인 가족 팬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까지 세 명이 나란히 휴스턴 유니폼과 셔츠를 입고 경기장 밖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배승열 기자를 통해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그들은 꽤 먼 곳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히로시마에서 왔어요. 세 시간 정도 걸려서 왔죠” 아버지 야마구라 코우이치 씨의 말이다.

코우이치 씨는 하킴 올라주원이 있었던 90년대부터 휴스턴 로케츠의 열혈 팬이었다고 한다. 20년 넘게 휴스턴을 응원하던 중 마침 일본에서 휴스턴 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너무 기쁜 마음에 예매를 해서 사이타마에 부인, 아들과 함께 오게 됐다고.

야마구라 쿄우미 씨는 남편을 따라 자연스럽게 휴스턴 팬이 됐다. 아들인 야마구라 다이후쿠 군은 현재 11살의 초등학생인데, 원래 오클라호마시티와 폴 조지의 팬이었다가 올여름에 러셀 웨스트브룩을 따라 휴스턴 팬이 됐다. 실제로 그는 폴 조지의 오클라호마시티 시절 유니폼을 바지로 입고 있었다.

셋은 “3시간 걸려서 여기까지 왔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휴스턴 로케츠가 정말 좋다.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 채 관람을 위해 경기장 입구로 떠났다.

폭풍 같았던 사흘간의 사이타마 취재를 뒤로 한 채 마지막 날 오전에 급히 공항으로 이동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꼭 오고 싶다.”

4박 5일 동안 일본어 통역 겸 취재 기자 겸 사진 기자 역할을 해낸 루키더바스켓의 ‘맥가이버’ 배승열 기자는 취재에 아쉬움이 남았는지 인천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으며 이런 말을 꺼냈다.

‘Where Amazing Happens.(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곳)’

한 때 NBA의 슬로건이었던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NBA 취재 기회가 또 다가오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소망했다. 공항 버스를 타러 나가니 며칠 사이에 서울 공기가 무척 쌀쌀해져 있었다.

 

사진 = 배승열, 이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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